
참좋은교회
CHARMJOEN CHURCH
멋진 하나님의 사람, 맛깔나는 신앙생활, 흥겨운 성도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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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태민안(國泰民安)’
우리나라는 동방의 중심이요, 이스라엘은 서방의 중심이다. 말하자면 지구의 중심축이라는 거다.
지구의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지만 공통점이 참 많다. 우선 혈통적으로 같은 셈족이다.
나라는 조그만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런 요인으로 주변 강대국의 침탈 대상이 되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반면 다른 나라를 공격한 역사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것마저도 상대국의 침탈에 정당 방어적 성격을 띄고 있다.
두 나라는 시련과 아픔을 많이 당하고 살았다는 거다. 그러함에도 오뚝이같이 넘어지면 일어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아빠라는 호칭도 같다. 더군다나 가장 만이 사용하는 인사말의 뜻도 비슷하다.
민족적 소원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발 뻗고 편안히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녕’과 ‘샬롬’에는 평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밤새 안녕’이라는 말을 어른들을 통해 종 종 듣곤 했었다.
평안치 못했던 두 민족의 삶이 어떠했는지?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하룻밤 사이에도 안녕치 못한 일들이 많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두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안녕’은 과거형이고 ‘샬롬’은 현재진행형이자 미래형이다.
안녕은 숙명(운명)론에 입각한 인사말이고 ‘샬롬’은 섭리론에 의한 인사말이다.
‘안녕’은 어젯밤 ‘운’ 좋게 잘 지냈냐는 물음이다.
반면 ‘샬롬’은 하나님의 보살핌 가운데 평안키를 축복하는 것이다.
‘안녕’은 평안을 주는 대상이 막연하고, ‘샬롬’은 명확한 것이 특징이다.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같은데, 막연함과 명확성에서 차이가 있다.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많은 간 극이 존재한다.
표적 없는 화살은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에 헛수고만 하는 것이다.
반면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은 목표를 관통하게 된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불안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어느 민족보다 평안을 갈구하지만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 너무 아프다.
버들강아지 꽃망울이 햇살에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봄이다.
꽃샘추위가 한 번 더 남았다는 예보도 있지만, 얼마나 가겠는가!
입춘이 되면 대문에 큼지막한 글씨로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과 함께,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글을 붙인다.
따사로운 봄과 같이 가정에 훈풍만 불기를 기원하는 문구다. 더불어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들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평안은 인류의 공통된 소망일 것이다. 죄로 인해 에덴을 쫒겨난 인간들에게 평안한 삶이란 그저 소망일 뿐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오 천년 역사 가운데 하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조금 살만하면, 외침과 내란으로 인해 백성들은 온갖 고초를 겪어왔다.
나라가 평안해야 가정도 그러한 법이다.
전쟁의 역사, 나라를 빼앗기는 망국의 역사, 내란의 역사, 가난의 역사 등, ‘국태민안(國泰民安)’ 기원이 무색했던 우리의 역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편안한 나라를 물려주려 선진들은 피와 땀을 얼마나 흘렸던가!
뼈 빠지게 일하여 열방이 부러워하는 자유 대한민국을 세웠다. 살림살이는 오 천년 역사 이래 가장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거들떠보지 않던 나라가, 손재주와 부지런함으로 온 세계의 기술과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팝송을 듣고, 홍콩영화에 매료되었던 때가 엊그제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제를 휩쓸고 있다.
음악 경연 수상자명단에는 어김없이 한국 이름이 등장한다. K-POP 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급기야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나오더니, 작년에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스포츠 여러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미국, 일본 제품 인기는 대단했었다.
‘미제는 똥도 좋다’라는 유행어가 생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국산 제품이 형편없는 취급받았던 시절 얘기다.
이제는 오히려 국산 제품을 사용해야 안심될 정도로 가치와 위상이 높아져 있다.
나라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이 한껏 올라가는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라가 지금 너무 위태롭다.
민심은 두 동강도 모자라 네 동강이 나 버렸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형국이다.
어두운 그림자들이 스멀거린다. 우리가 어설픈 ‘안녕’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에 머물러 있으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대할 수 없다. 안녕을 넘어 ‘샬롬’으로 가야 한다.
‘샬롬’의 왕이신 주님께 지혜와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샬롬’은 우연이 아닌 주님의 섭리 안에 주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주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속히 ‘샬롬’의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가 자손 대대로 이어지게 하소서!” 샬롬! 대한민국! 샬롬! 우리 조국!! 샬롬! 영원하라!!!
사랑방이야기 제 553호 ‘국태민안(國泰民安)’
글쓴이 : 이 능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