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좋은교회
CHARMJOEN CHURCH
멋진 하나님의 사람, 맛깔나는 신앙생활, 흥겨운 성도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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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묵상’
초인 종소리에 거실 모니터를 보니 상훈이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빨리 열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나 보다.
문을 열어주려 벌떡 일어나려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청소하려는데 아내가 바닥에 먼지가 많다며, 버릴 양말을 덧신고 하라 해서 신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하필 미끄러운 나일론 양말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심하게 넘어졌던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근래 이리 심하게 넘어진 적이 없었다. 어디가 아픈지조차도 모르겠다. 혜주가 놀라서 달려온다. 그런데 웃음은 뭐람!
주방에 있던 아내도 왜 그렇게 넘어졌냐고, 걱정의 말은 하면서, 역시 웃고 있다.
80Kg 덩치가 넘어지며 망가지는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던 모양이다.
당사자인 나는 넘어진 충격도 충격이려니와 그런 상황에서 웃는 저들이 어이가 없다.
그 일이 있고부터 몇 주가 지났는데도 후유증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정안이와 놀이터에 갔는데, 초등 3학년쯤 된 아이가 짚라인을 타고 내려와 무방비상태의 나를 덮친 것이다.
충격이 어찌나 크던지! 볼품없이 나뒹굴고 말았다. 아이 엄마가 달려와 어쩔 줄 모르며 괜찮냐고 한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나동그라졌으니 왜 안 그랬겠나!
오히려 아이가 걱정된 나는 아이는 어떠냐고 되물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비로소 놀이터에 사람들 시선이 느껴진다.
오늘따라 왜 이리 사람은 많은지! 아픔은 둘째치고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 관리하며 일어났다.
정안이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할아버지 걱정했어요!”라고 한다.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랬나 보다.
“정안이가 많이, 놀랬구나! 라며 얼굴을 쓰다듬어주니 조금 안심되는 모양이다.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며 생각해보았다. 지난번 아내와 딸은 넘어진 나를 걱정하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런데 정안이는 달랐다. 웃음기 조금도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온 마음이 넘어진 할아버지 생각으로 가득 차서 웃음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혜주에게 놀이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며, 왜 이런 일이 연이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걱정하는 마음은 보이지 않고,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는다. 이게 뭐지! 기분이 개운치 않다.
가족들도 그러한데, 다른 사람의 아픔을 제대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그건 그렇고 이런 일을 이어서 겪게 되는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를 향한 주님의 메세지 같긴 한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난주간 묵상 중 무릎을 탁치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아하~그것 때문이구나! ‘유튜브 쇼츠’다.
계엄과 탄핵정국을 지내며 답답한 마음에 유투브 코믹 쇼츠를 자주 보게 되었다.
그중 사람들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웃음으로써 마음을 풀곤 했었다. 문제는 너무 자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경고로 주님께서 두 번이나 강하게 넘어뜨리신 것이다. 정신 차리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스타일이 망가지는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영상 속 넘어지는 사람들은 큰 부상을, 입거나 생명까지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들이다.
그것을 보고 목사인 내가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니! 너무 부끄러워진다.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숨은 악을 보게 된다. 주님께서 그런 나를 어떻게 보고 계셨을까? 너무 한심스럽다.
고심 끝에 나를 넘어뜨려서라도 정신 차리게 하신 것이라는 깨달음에 죄송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아울러 주님 그 사랑에 목이 메인다. 버림받은 주님이 채칙 맞으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다.
수 없이 지쳐 쓰러지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희롱하던 군병들 모습이 내 모습과 겹쳐 지나간다.
이번 일을 통해 내 속에 잔존 하는 악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이 너무 밉다.
하덕규 목사님이 만든 ‘가시나무새’라는 곡에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는 노랫말이 있다.
내 속에도 모르는 내가 너무 많다. 문제는 악이 더 많다는 거다.
잠언 24장 17절에“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말씀하셨다.
원수의 넘어짐마저도 기뻐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하물며 다른 이들의 넘어짐이랴!
사랑방이야기 제 558호 ‘고난주간 묵상’
글쓴이 : 이 능 순